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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라는 인공 지능이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조심스럽게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입시 교육에 묶여 주입식 교육 속에서 치열한 경쟁속에서 12년의 학창 시절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면 과연 지금의 교육이 올바른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서 가져올 산업의 흥망성쇠가 직업군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언제 변화할지는 현재로써는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주목을 끄는 직업의 변화를 예상해보자.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면 과연 모든 직업이 사라져 인간이 모든 노동에서 해방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과연 합리적인 예상인지 고민해보자. 우리는 과거 산업혁명에서 증기 엔진이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모두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도들은 도시화, 산업화에 따라 다른 형태의 육체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은 모두 자본가가 독식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지능은 인류의 이러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진전한 노동의 해방을 이룩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기술의 대한 전망만으로 직업, 산업의 변화릉 예측하는 건 합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 도입의 범위, 방식, 절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공정한 협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시장의 구조에서 그 해결점을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형태의 노동 시장이 생겨날 것이다. 자본가는 실존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생산과 소비가 순환 구조를 가져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생산이 인공지능과 산업로봇이 대체한다고 해도 순환의 한 축인 소비가 유지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농노에서 산업 노동자로 변화되었고,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동 구조가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는 과도기와 성숙기에서 생겨날 새로운 노동 시장이 현재의 산업 노동자의 승계할 정도의 큰 고용 구조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양적 고용이다. 지금까지 절대 다수의 노동 시장은 산업혁명 이전은 농업의 농노였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산업 노농자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인공지능은 농도, 산업 노동자로 이어지는 양적 고용을 승계할 수 있겠는가? 너무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양적 고용을 줄이기 위해 산업혁명 이후 이루어진 것이 바로 기계 설비, 산업로봇의 개발과 상용화였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직업 생성과 분화가 촉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바로 산업혁명이후 분화, 창성된 직업들을 흡수하여 이곳에서 노동하던 화이트 컬러 직업군까지 흡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지능에만 국한되지 않고, 빅데이타를 활용하여 인간의 산업적 실무를 대체하여 인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질적 고용이다. 우선, 현재 영미권 국가의 고용 시장에서 주류로 인식되는 케인즈의 신자유주의에 의거하여 해고가 보다 유연해진 상황이어서 앞서 언급한 양적 고용의 창성과 분화가 형성되기 이전에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거슬러 막을순 없겠지만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공지능이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양적고용이 가능한 노동 시장이 창성되기전 직업 분화 혹은 발전된 질적 고용이 가능하겠다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즉 직업의 분화는 미시적으로는 질적 고용, 거시적으로는 분화가 합쳐져 양적 고용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질적고용이 단순히 기존의 직업에서 분화된 것에 국한된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2차 잠식되는 직업군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분화되어 얼마나 개량된 직업으로 향상되는가 하는 질적 고용이 인간의 노동 시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해보자. 

새로운 직업의 창성보다 기존의 직업의 분화와 개량을 통한 질적 고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텐데,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교육 분야에는 교사 역시 향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유교적 사상이 강한 한국에선 초등과정에선 교육 못지 않게 보육이라는 측면도 중시하고 있고, 중등과정에선 순수한 교육의 의미보다 입시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어느 시기에 와 있는지 다시 살펴보자.

현재 많은 언론에서 인공지능이 현실화될 사회에서 어떠한 인재가 살아남을 것인가? 이를 위해 어떠한 교육이 있어야 하는가? 마치 서바이벌 경기와 같은 질문과 해결점을 찾고자 논쟁하고 있다.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 시점과 방식에 대한 논의도 전혀하지 않는다는 점에 이런 논쟁은 정말 무의미한 화제성 가쉽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인공지능 현실화의 시기와 방식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다.


몇 일전 발표된 미국의 인공지능에 대한 전망 보고서에서는 미국내 인공지능 전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2045~2050년이면 미국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현실화되어 산업 구조의 큰 변화가 생겨나서 직업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렇다면 향후 30년후의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인공지능의 사회가 현실화된 것이다. 지금의 사회 참여 세대가 아니라 지금의 유아 혹은 향후 10년이내 태어날 세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지금 세대의 교육이 아니라 향후 10년이내 태어날 세대의 교육과 가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맞는 교육에 대해 앞서 언급한 주입식 교육보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창의력이라는 정의는 무엇일까?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 혹은 발명하는 것만 창의력일까? 그렇다면 사고력은 또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그리고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무조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방식만이 옳은 것일까?


우선 창의력은 단순히 창의성이라는 것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는 관찰력, 수리력, 논리력 등 종합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은 사고력, 창의력, 논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를 기본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글쓰기, 토론하기 등을 말하며, 계산 중심의 수학보다 수학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통계, 즉 수학적 설계, 통계적 분석, 데이타 마이닝, 승수비 및 확률 계산 등을 다루는 새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반면 오로지 직접 체험만을 중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래서 직접 실험은 물론 체험학습, 참여학습등을 통해 풍부한 경험이 사고력 향상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교육 교구를 통해 다이나믹한 학습법도 활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교육 보고서에 따르면 삽화가 많은 교재보다 텍스트 위주의 교재를 통한 학습이 사고력, 논리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고 나타났다. 또한 다이나믹한 동영상, 인터넷 및 교육 컨텐츠는 뇌를 다양하게 사용하기 보다 자극적인 효과 뿐이어서 사고력 향상에 오히려 나쁘다는 연구도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호주,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에서 보고된 바 있다. 



Posted by Road Idea